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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에세이 영화 여행 맛집

산책길 끝에서 마주한 6월의 마음

by 도시천사 2026. 6. 11.

고즈넉한 달빛 그림자를 쫒듯 우리 네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 맞춰 걷는다.

이젠 익숙한 듯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 앞에서 나란히 열 맞춰 서 있다.

 

저녁이란 이름에 시간을 달고 절기상 여름을 치장한 해가 아직 남아 있는 하루다.

건물 상가 불빛들은 세상 밖으로 저마다의 빛을 내뿜으며,  어둠을 밝히고있다.

 

온종일 시달렸던 공사 현장 소리는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넉넉하니 내 마음이 서두르지 않는 시간으로 달가워진 이유가 됐다.

 

오전 내내 들춰진  창문으로 계속된 소음에 시달리는 날, 어느 때는 세상과 융합되는 소리였다가, 또 다른 어느

요일에 들려오는 소음은, 빗소리를 기다리는 날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손님으로 치장한 몸단장을 하고서 식당 안으로 안내되고 있다.

사람들의 웃고 떠들며 웅성거리는 소리에 어우러져 덩달아 같이 즐거워진다.

음식으로 내 기력을 보충하고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행복지수를 얻고자 왔다.

매번 외식할 수 없지만 필요에 따라 나의 편함을 제공받는 기여자가 되어있다.

 

부딪히는 술잔이 내는 소리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 사람들을 위한 건배사가 되어주고 있었다.

기분 좋은 흡족함이다.

재잘재잘 웃음에는 이야기 주제가 맞춤으로 줄 지어 있고, 동고동락으로 뭉친 실타래처럼 끈끈한 가족애를 보듬으며 서로를 위하고 있다.

 

뻗어난 가지마다 울타리 치며 가족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서로를 아껴 가는 모습을 보더라도 내가 얻어 갈 수 있는 우리라는 가족이 주는 공동체 주체를 찾아냈다.

 

배도 마음껏 부르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다들 산책을 원한다.

우리 동네 한 바퀴 돌다 갈까.”

우리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겨운 말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자연스러운 산책길로 들어선다.

 

가는 길목에 늘보고 자란 인공폭포가 가동을 멈춘 지 오래된 모양이다.

정비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절기상 땡볕 나는 기회를 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내일하면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이렇게 현충탑 공원에 이르러 첫 계단을 발 디딜 수 있었다.

 

갑자기 기어들어 가는 내 내면의 목소리에 스스로 깜짝 놀랬다.

가슴에 손을 얻으며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절로 나오는가 싶더니

왠걸

그다음 소절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

 

돌이켜보면 어린 마음에 사이렌 소리에 맞춰, 부동의 자세로 만사 일 제쳐두고 가슴에 손 얻으며,  온국민이 애국심을 갖추자는 취지에서 주어진,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애국가로 돌아가 본다.

다행히 애국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려지는 게 다행이었다.

다시 아무리 또다시 소리 내어 떠올리고 싶어도, 왜 기억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감감하기만 하다.

기억은 앞세우고 싶어지고, 시간은 지체되고, 멈춰지는 입에서는 머뭇거린다.

 

이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는 이곳에서, 내가 이러고 있으니 창피한 일이다.

 

나만이 아니였다. 앞서 같이 걷는 가족도 다같이 중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건지, 외우고 있는건지, 나에게 들으라는 건지,  각자만의 소리로 흘리고 있다.

 

아무튼 이런 일도 없었으면 무작정 걸었을, 그 길이 야무지게 대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현충탑 꼭대기에 이르렀다.

 

커다란 천막들이 이어지고 기둥을 마주 서며 버티고 있다.

각을 세우며 붙잡으려 하고 있어선지 든든하게 내일의 그늘막이 되어줄 것만 같다.

내일 제71회 참전용사 기념일인 현충일에 쓰여 질 의자도 빽빽이 들어서 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한 뜻이 되어있다는 걸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

 

탑 입구 기념비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

마음이 숭고한 정신으로 넋을 기리기 시작했다.

 

아빠를 필두로 묵념이 시작된다.

남편도 이 나라의 애국자였다.

내가 모르고 있던 또 다른 남편의 모습이다.

다음은 딸도 조용히 아빠 곁에 머물며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다음 내 차례다.

 

늘 걸음걸이가 뒤처지는 바람에, 뒤늦게 현충탑 한 계단을 내디딜 때,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다.

학창 시절 묵념하고는 다른 또 다른 묵직한 묵념인 것이다.

놀랄 일도 아닌데 멈칫 속으로 놀란다.

 

공교롭게도 기념비 한가운데 우뚝 서서 대표적인 묵념을 나 혼자 하게 되는 셈이라니.’

살면서 이런 대표적인 자리라는 가운데를 서보지 못한 나였다.

 

쑥스러움과 창피함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자연스럽지 않게 어색함이 분간을 못 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허무맹랑한 이러한 생각 들은 이런 자리에 비교할 바 아니다.’라며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단점을 맨 밑바닥에 보내고 우뚝 선 내 자신감을 지켜보며 서 있게 된다.

 

고개 숙여 묵념한다.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하며 우리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열의 넋을 기립니다.

나라를 위해 모진 고초와 노고를 치르셨기에 오늘에 내가 이런 편한 세상을 제공받으며 살고 있음을 감사할 따름이다.

 

인사를 하고 고개 들어 뒤돌아볼 찰나, 남편의 손 거머쥔 손안에 핸드폰이 들려 있다.

그 작은 렌즈 너머 나를 담고 있을 때,  6월의 햇살은  부드럽게 사랑으로 머물러있었다.

나를 겨냥한 사랑의 초점이 아닌가 싶다.

 

내 뒷모습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오늘 산책길에서 내가 얻은 가장 따스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