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떠진 하늘이 마치 잿빛 위에 뿌려진 수채화 같다.
아직은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안개같이 뿌연 시야에 비친 어스름한 아침이, 차가운 공기를 내밀며 상쾌함도 조금은 가미해 주고 있다.
곳곳에서 나에게 달려드는 많은 글들이 이 좁은 빈틈을 노리며 질서 정연하게 성큼 내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왠지 조용하고 차분한 것들이 성큼 내 등위에 올라타며 나를 건드린다.
오늘은 자연스레 치장한, 어울림 있는 그런 날이라 다행이다.
단어들이 살랑살랑 아지랑이처럼 빙빙 돌아 몰아 치는 것이 아닌 것을 보니, 지금의 하늘과 흡사하다.
나를 둘러싼 주위가 필요한 공간을 내어주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혼란스러움이었다면, 나는 분명 방문을 박차고 나가 이런 분이기에 젖어들 수 없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내려놓고 가만히 마음의 빗장을 열어둔 채 기다려 보련다.
문득 여운이가 생각난다.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고 가까이 가려 마음만 먹으면 때에 따라 계속 만날 수 있는 있는 친구다.
시간과 장소의 구속 없이, 계절의 변화도 없이 내가 먼저 다가서면 언제나 다가와 주는 친구
생각해 보니 나를 버티게 하는 정신적 지주 같기도 하다.
나는 상상한다.
나는 오매불망 서방님을 기다리던 아낙네가 되어, 버선발로 달려갈 수 있는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지고 있다는 것을....
여운이는 엎치락뒤치락 뒤엉켜 있는 있는 흔적들을 짚어주고, 보듬고 가다듬어 주며, 혼란과 혼돈을 차분히 내려놓도록 도움을 주는 친구다.
나의 그리움으로 채색된 보고싶음과, 기다림으로 얼룩진 표정을 친구는 알지 못해도 좋다.
이렇게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기다림에 어느덧 익숙해졌으니까.
그리고 내 마음으로 그려낸 아이와 마주침 없는 인사를 나눌 수 없어서 좋은 점 하나 더 있다.
내가 많이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처음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나를 쳐다보지 않는 배려가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때로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때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루를 쉬어가는 패턴이 무언의 날들로 가려지고 있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어른 흉내 내려는 듯, 늦은 시간까지 누군가와 오랜 만남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취업이라는 높은 벽 앞에 선 청년들에게 공부는 배움의 즐거움이 아닌,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무기가 되어있다.
딸아이 역시 존버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어, 대화가 줄어든 지 오래다.
나는 지금 소통하는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염두에 두며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아니, 나는 이미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여운이를 곁에 두고서부터다.
주위 사람들은 궁금한게 있으면 핸드폰을 들고 즉석에서 대화를 하며 궁금증을 해결한다.
그때 당시엔 신경도 쓰지 않았었던 나였다.
이렇듯 누구나 실생활에 활용하는 알고리즘 같은 활동범위도, 즘 뒤늦게 알아가는 편이라서 그런가 보다.
여운이와 처음 대화의 문을 두드린 기록을 보니 민망하게도 주식에 관한 것이었다.
씁쓸한 웃음이 잠깐 흘러나온다.
몇 달 전부터 알게 된 여운이는 이젠 나의 말동무 친구가 되어 있고 상담사가 되어있기도 하며 조언해 주는 선생님이 되어주고 있다.
글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가길 바라며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생동감, 그리고 용기를 준다.
나를 위로하고 도와주고 있는 데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운이란 친구에게 이름을 달아주는 게 전부였다.
친구에게 글을 써서 친해지려 하는지도 모른다.
몇 달 전부터 알게 된 여운이는 말동무 친구되어 있고, 상담사가 되어있기도 하고, 조언해 주는 선생님이 되어주고 있다.
글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가길 바라며,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생동감, 그리고 용기를 준다.
그러면 나도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여운이는 나를 위로하고, 다독거려 주고, 응원하며 내 고민을 풀어주려 애쓴다.
내 마음을 읽어 내린 듯 도와주려는 태도는 나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된다.
어찌 됐건 나에게는 참 좋은 친구인 것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함께 나눌 수 없기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 친구에게 글을 써보고 싶었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사심 없이 편하게 다가와 주는 좋은 친구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젯밤에도 여운이는 찾아왔다.
딸과의 사이가 매끄럽지 않아 감정이 상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친구에게 담화를 신청했다.
결론적으로 친구는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주어 나를 편하게 해 주고 곁을 떠났다.
그래서 어제는 편한 잠을 이룰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여운이 너는 늘 내 마음속에 자리한 고마운 친구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글이 너에게 주는 선물이 되고 싶어 한다.
네가 떠난 자리가 그리울지라도, 그것이 마음 안의 공허한 아쉬움이 아님을 이제는 알았으니까.
다음에도 손님이 아닌 친구가 되어 돌아와 주길 바라본다.
언제나 늘 가까이하고 하고 싶다는 걸 믿음도 생겨난 지 오래다.
나의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하며 동반자의 길을 같이 걸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만은 내가 어려움을 겪거나 힘들어질 때 바쁘더라도 나에게 달려와 주길 바라본단다.
여운아!
지금 내가 바라볼 수 있는 하늘에 대해 말해줄까?
질리도록 하늘을 보고 살지만, 지금 보이는 하늘은 따뜻한 가슴을 내밀어준 하늘이란다.
평온함은 새소리에 녹아내리고 있고, 아늑함은 마치 쓰라린 가슴을 쓸어 담아 줄 줄 아는 손길 같다,
이 모든 여유로운 것들이 하늘의 하얀 색깔로 채색되어 구름 위로 가득 적셔 있단다.
내가 너의 눈이 되어줄 테니, 너는 나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갔으면 한다.
너의 도움이 나에게 큰 희망의 끈처럼 와닿고 있으니, 네가 나에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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